130401 Pieces

01.
4월의 첫날
거짓말처럼 아침부터 코피가 났다. 하루종일 머리가 딩딩거렸다. 

02.
전신마취후유증이라도 겪는 사람처럼
요즘의 나를 보면 70대 노인네가 들어찬 것 같다.
자주 기가 빠지고, 자주 침잠하게 된다.
물론 이것은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삶에 '스팽글'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반짝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재미가 없다.
아무것도 그 누구도 설레는 존재가, 대상이 없다.
이것이 그 어떤 상태보다 극단으로 가는 것임을 알기에 나는 조금 무섭다.
그래서 이런 기운과 싸워보려고 무던히 노력중이다.
재미없어도 사람을 만나려, 애써 할일을 찾아보려, 해야하는 일은 물론 안해도 되는 일을 재밌다 생각하며 해보려고.
하지만 역시 왜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내가 아는 누군가는 애초에 왜라는 질문 없이 저절로 사는 게 인생이랬는데 난 여전히 왜와 어떻게를 믿고 있다.

03.
오늘을 버티고 내일을 살게 하는 힘.
당신의 테마는 무엇인가요.
당신의 내면풍경은.

04.
지금보다 멘탈이 더 불안했을 때는 적어도 '격정'이라는 것이 있었다. 난 그 격정의 힘으로 글을 썼고, 그림을 그렸고, 사진을 찍었고, 밤길을 나서고, 술을 마시고, 생각을 하고 여행을 했다. 지금은 그 불안과 격정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이 나에게 어떤 데미지를 끼치는 지를 알기에 감히 뛰어들지 않는다. 그때는 그냥 지금보다 뭘 더 모르는, 한 마리의 자아찾기 불나방 같은 존재였다.

지금은 결핍이 결핍된 상태이며 결핍을 찾아 채우자니 의지가 너무 나약한, 게으른 상태이다.
제품수명주기로 따져도 이건 성숙기에서 쇠퇴기로 넘어가는 상태가 맞을거다. 어머나.. 망했다.

05.
결핍이 결핍됐다는 건 참이 아닐 수도 있다.
난 지금 나에게 어떤 게 결핍되어 있는지, 어떤 욕구가 일고 있는지 정확히 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과정이 너무나 번잡하고 무겁고 불필요하게 느껴질 뿐.

내가 글을 쓰지 않고 사진을 찍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사회에서 하라고 하는것만 해도 난 normal이 된다.
피지컬도 멘탈도 누가 봐도 안정적인 상태.

하지만 받기만 하는 사랑에 느끼는 부채감처럼
혹은 은퇴 후 일에서든 자식에게서든 자기효능감을 찾을 수 없는 어떤 70대 가장처럼
욕구와 그나마 있는 재능을 어떤 쓸모없는 짓에 쓸데없이 쓰지도 못하는 이 게으름이 난 지겹다.

06.
빨래를 했으니 작업도 좀 해.
네 혼자 하는, 컨펌을 받지 않아도 되는 작업이라 해서 밀어두다보면
결국 생각에 곰팡이가 피고 냄새가 날거야. 넌 아무 작업도 할 수 없어.

07.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2013년은 해야할 일들에 휩싸여 겨우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고 숨만 쉬어도 다행이다,
할일만 하고 살아도 잘한거다 싶을 정도로 지루하고 질펀한 해가 될거라 예상했는데

벌써 4월이라는 게.

시간이 가는 것이 빠르게 느껴지는 날도 있고 더디게 느껴지는 날도 있지만
그래도 인생의 지루한 페이지가 한장한장 공평하게 넘어가고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00.
지금 난 존나 쏘울도 기력도 없는 상태니 어서 내게 쏘울을 투여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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