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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적인 대상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역시 그 나름대로 고통을 부를 수 있다. 세상이 전쟁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기도 하고, 어떤 분야에서 지식을 습득하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친구들이 죽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고통은 자신에 대한 혐오로 생기는 고통과는 달리 삶의 본질적인 부분까지 파괴하지는 않는다. 외부에 대한 관심은 어떤 활동을 할 마음을 불러일으키는데, 그 관심이 살아있는 한 사람은 결코 권태를 느끼지 않는다.
(중략) 지나치게 자기 자신에게 몰입하는 바람에 불행해진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외부적인 훈련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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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요즘에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간 불행한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절망의 늪에 빠져 어떤 만족도 추구하지 않으면서, 고통을 잊으려고 기분전환만을 추구한다. 이런 사람은 '쾌락'의 광신자가 된다. 그는 자신의 생명력을 줄여서라도 고통스러운 삶을 견디려고 한다. 예를 들어 술에 취하는 것은 일시적인 자살이나 다름없다. 술에 취해서 누리는 행복은 불행을 잠시 중단시키는 데서 오는 순간적이고 소극적인 행복이다.
자기도취나 과대망상에 빠진 사람은 행복을 얻기 위한 수단이 잘못되기는 했지만, 그나마 행복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무엇에든 취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망각상태가 되는 것 말고는 아무런 희망을 가지지 않는다. 이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행복이 바람직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는 일이다. 잠을 설친 사람들이 그렇듯이 불행한 사람들은 늘 자신이 불행하다는 사실을 자랑하는데, 그것은 꼬리 잃은 여우가 하는 자랑과 하나도 다를 것 없는 무익한 짓이다. 그가 불행을 치유할 수 있게 하려면 새로운 꼬리를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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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염세주의자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수입이 줄어드는 사람이 많을 때에는 늘 염세주의자가 늘어난다. 크러치는 미국인이며, 제1차 세계대전 덕분에 미국인의 수입은 전체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럽 전역의 지식인 계층은 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고, 모든 사람들이 전쟁으로 인해 불안에 떨고 있었다. 시대적 분위기는 세계의 본질에 대한 그 시대의 이론보다 이러한 사회적 원인과 더 밀접한 관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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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른스트 톨러의 군중인[대중과 인간] (중략)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에 대해 내린 정의처럼, "연민과 공포에 의해 독자의 마음을 정화시켜"준다. 요즘에는 이런 현대적 비극은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다. 옛날의 기법과 전통은 버려야 할 낡은 것으로 취급되고, 그 빈 자리에는 진부한 교양만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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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을 쓰기 위해서는 비극을 느껴야 한다. 비극을 느끼기 위해서는 그저 마음으로만이 아니라, 피와 근육으로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인식해야 한다. 크러치는 그의 저서에서 여러 번 절망에 대해 말하고 있다.
(중략) 분명 자극은 존재하지만 문필가 그룹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문필가 그룹은 공동체의 삶과 생생한 접촉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감정이 비극과 참된 행복이 전개될 수 있을 만큼의 진지함과 깊이를 지니려면, 공동체의 삶과 긴밀하게 접촉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 세상에는 할 만한 일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 때문에 고민하는 모든 재능 있는 젊은이들에게 나는 이렇게 충고하겠다.
"글을 쓰려는 생각을 버려라. 그 대신 글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해보라. 세상으로 나가라. 해적도 되어보고, 보르네오의 왕도 되어보고, 소련의 노동자도 되어보라. 기본적인 신체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생활을 해라."
(중략) 예전에 지식인이었던 살마들은 몇 년 동안 이렇게 생활하고 나면,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시기에 도달하면 글을 쓰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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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가난 때문에 심한 고생을 겪었던 사람들은 자기 자식들도 똑같은 고통을 겪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아무리 많은 돈도 이런 불행을 막을 만한 든든한 보루가 될 수는 없다고 느낀다. 이러한 두려움은 가난의 고통을 겪었던 첫 세대로서는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심한 가난을 모르고 자란 다음 세대들은 첫 세대만큼 가난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지 않는다. 행복을 앗아가는 경쟁의 문제에 있어서 이런 가난에 대한 두려움은 사소하고도 상당히 예욎거인 요소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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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날, 나는 미국 대학생들 몇몇과 함께 캠퍼스 기슭의 숲을 거닐었다. 숲에는 아름다운 야생화들이 만발해 있었지만 그 야생화들 중에서 어느 것 하나의 이름이라도 제대로 아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하기야 그런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꽃 이름 따위를 알아봐야 돈벌이에는 아무런 보탬에 되지 않을 텐데.
이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또한 어떤 개인이 단독으로 막아낼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이 문제는 삶이란 승자만이 존경받는 승부요, 경쟁이라는 일반화된 생활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감성과 지성을 포기하고 의지만을 지나치게 키우는 결과를 불러온다. 이런 관점을 입에 올리면서 우리는 말 앞에 마차를 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신앙을 강조했던 청교도적 도덕주의자들이 현대에 와서는 늘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청교도주의 시대가 만들어낸 경주는 의지만을 과도하게 발전시키고 감성과 지성을 쇠약하게 만들었으며, 경쟁의 철학을 자신의 본성에 가장 적합한 철학으로 선택했다.
선사시대의 공룡들처럼 지성보다는 근력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지성과 감성을 배제하고 의지와 경쟁을 강조하는 사람들을 현대판 공룡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이 현대판 공룡의 놀라운 성공 때문에 현대인들은 너도나도 이 공룡의 행동을 따라하고 있다. 이 공룡은 전 세계 백인들의 모범이 되고 있는데, 아마 앞으로 백년 간은 이러한 경향이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러나 이 유행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이 공룡들이 서로 살육하며 결국 멸종할 것이므로 최후의 승자가 되지는 못할 것이며, 결국 지혜로운 구경꾼들이 공룡들의 왕국을 물려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위안을 받을 것이다.
(중략) 인생에서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는 경쟁은 지나치게 냉혹하고 집요하며, 필요 이상으로 근육을 혹사시키고 의지 또한 지나칠 정도로 집중하도록 만든다. 이런 경쟁이 삶의 근본 철학이 될 수 있는 시기는 기껏해야 한 두 세대에 지나지 않는다. 그 기간이 지나고 나면 경쟁은 신경의 피로를 초래하고, 여러 가지 도피현상을 일으키며, 쾌락 추구를 사업만큼이나 긴장되고 어려운 일로 만들어버려(휴식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마침내 재생산이 이루어지지 못해 재고가 바닥나는 지경에 도달할 것이다.
경쟁의 철학 때문에 오염되는 것은 일만이 아니다. 여가도 마찬가지로 오염된다. 조용히 신경을 안정시키는 여가는 권태로운 것으로 여기게 된다. 결국 여가의 경우에도 끊임없는 가속이 필요하게 될 것이고, 그 종착점은 마약복용과 탈진상태가 될 것이다. 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건전하고 조용한 즐거움을 인생의 균형 잡힌 이상형의 하나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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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사람들은 근무시간 중에는 권태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일을 할 필요가 없을 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조금도 권태롭지 않은 삶을 이상으로 여긴다. 그것은 멋진 이상이며, 나도 그것을 비난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하지만 걱정스러운 것은 다른 이상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이상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에 비해서 그런 이상을 달성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점이다. 전날 밤의 즐거움이 크면 클수록 아침의 권태는 더 깊어지게 마련이다. 결국 중년 시절도 오고, 노년 시절도 올 것이다. 스무 살 때는 서른 살이 되면 인생은 끝날 거라고 생각한다. 쉰여덟 살이 된 나로서는 그런 생각은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런 생각은 인생이라는 자본을 금전적인 자본처럼 소비하는 것으로 결코 현명하지 못하다.
(중략) 자극이 지나치게 많은 삶은 밑 빠진 독이나 다름없다. 이런 상태에서 사람들은 환희에 가까운 감격이야말로 즐거움의 필수요소라고 여기기 때문에, 끊임없이 감격을 느끼기 위해서 점점 더 강력한 자극을 찾을 수밖에 없다. 지나친 자극에 익숙해져버린 살마은 후추를 병적으로 좋아해서 결국 남들이 보기에는 숨이 막힐 정도로 많은 후추를 먹어도, 정작 본인은 별맛을 느끼지 못하게 된 사람과 비슷하다. 권태의 어떤 요소는 지나치게 많은 자극을 피하는 것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중략) 그러므로 어느 정도 권태를 견딜 수 있는 힘은 행복한 삶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다. 이것은 젊은 사람들이 배워야 하는 것 가운데 하나다.
훌륭한 책들은 모두 지루한 부분이 있고, 위대한 삶에도 재미 없는 시기가 있다.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단조로운 삶을 견디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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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도시인들이 느끼는 특별한 권태는 대지의 생명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것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대지의 생명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삶은 사막을 여행할 때처럼 드겁고 답답하고 갈증에 시달린다. 돈이 많아서 마음대로 생활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의 경우를 보자. 역설적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들이 겪는 권태 가운데는 권태를 두려워하는 데서 비롯된 특이한 권태가 있다. 그들은 생산적인 권태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다가 훨씬 나쁜 종류의 권태에 빠지고 만다. 행복한 인생이란 대부분 조용한 인생이다. 진정한 기쁨은 조용한 분위기 속에만 깃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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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결정을 내린 다음에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지 않은 이상 결코 그 결정을 번복하지 마라. 망설임만큼 심신을 지치게 하면서 쓸데없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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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종류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올바른 방법은 이성적으로 침착하게, 그러나 매우 집중적으로 그 두려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그 두려움에 대해 친숙한 감정이 들게 된다. 이러한 친밀감이 생기면 마침내 두려움의 칼날은 무뎌지고, 모든 문제가 따분한 것이 되고, 두려움에서 벗어나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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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질투는 도덕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일종의 나쁜 버릇이다. 질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사물 사이의 관계를 통해 보려는 데서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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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인 인간이 되면 무미건조한 생활을 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합리성은 내면 조화의 중심부이기 때문에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은, 내면의 갈등으로 늘 시달리고 있는 사람보다 훨씬 자유롭게 세상일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고, 외적인 목적을 성취하는 데 열정을 쏟을 수 있다. 자기 안에 갇히는 것은 대단히 따분한 일이지만, 바깥 세계를 향해서 관심과 정력을 돌리는 것은 대단히 즐거운 일이다.
인습적인 도덕 원칙은 지나치게 자아에 집중해왔다. 죄악의 개념은 자아에 어리석을 만큼 관심을 집중한 결과로 빚어진 산물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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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을 먹이는 데만 시간을 쓰고, 자신은 먹을 생각은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곧 죽고 말 것이다. 물론 그는 악과의 싸움에 다시 뛰어드는 데 필요한 힘을 기르기 위해서 영양을 섭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동기에서 음식을 먹으면 소화가 잘 될지 의문이다. 식욕이 돌아야 침도 제대로 나오고 소화도 잘 될텐데 말이다. 그러므로 공익을 위한 일이라는 생각으로 식사를 하는 것보다는 음식을 즐기면서 식사를 하는 것이 더 좋다.
식사에 적용되는 이런 원칙은 다른 일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무슨 일을 하든 확실한 열정의 도움이 있을 때에만 일이 제대로 이루어진다. 이기적인 동기가 없으면 열정은 생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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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필수조건은 우연히 이웃이 되거나 알고 지내게 된 사람들이 지닌 비본질적인 취미나 욕망에 견주어 자신의 생활 방식을 확립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충동으로부터 비롯한 생활 방식을 확립하는 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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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5
충동은 불규칙한데, 문명사회의 습관은 규칙적이다.
(중략) 문명인의 삶은 모든 순간마다 충동을 억제해야 하는 상황에 구속된다.
아무리 기분이 좋아도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출 수도 없고, 아무리 슬퍼도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 수 없다. 그런 행동은 행인들의 통행을 방해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어려서는 학교에서, 어른이 되어서는 직장에서 내내 자유를 제한받는다. 결국 열정을 유지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이런 지속적인 제한들은 쉽게 피로와 권태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능적인 충동을 상당부분 억제하지 못할 경우, 문명사회는 유지될 수 없다. 본능적인 충동은 현대의 경제조직이 필요로 하는 고도의 복잡한 사회적 협동 형태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가장 단순한 사회적 협동 형태만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열정을 가로막는 이런 장애물들을 뛰어넘으려면 건강과 넘치는 활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물론 운이 좋아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일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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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넓은 관심, 튼튼한 인생>
p.285 인생의 폭이 협소할수록, 우연한 사건이 우리 인생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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