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로 코엘료,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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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자신이 지극히 정상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죽겠다는 그녀의 결정은 아주 단순한 두 가지 이유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는 쪽지를 남긴다면, 많은 사람들이 동감할 거라고 그녀는 확신했다. 이유가 명확했으므로.
첫번째 이유, 그녀의 삶은 이제 모든 것이 너무 뻔했다. 젊음이 가고 나면 그 다음엔 내리막길이다. 어김없이 찾아와서는 돌이킬 수 없는 흔적을 남기는 노쇠와 질병들, 그리고 사라져가는 친구들. 이 이상 산다고 해서 얻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고통의 위험만 커질 뿐이었다.
두번째 이유는 보다 철학적인 것이었다. 신문과 텔레비젼을 통해 그녀는 세상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로서는 그러한 상황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자신이 세상에 아무런 쓸모가 없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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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름다운 오후, 류블랴나 광장 위로 볼리비아 악사들의 토속 음악이 흐르고, 한 청년이 그녀의 창 앞을 지나가는 사이, 죽음을 기다리는 그녀는 자신의 눈이 보고 있는 것, 자신의 귀가 듣고 있는 것에 행복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똑같은 광경을 삼사십 년이나 오십 년 동안 보고 듣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더욱더 행복했다. 몇십 년을 두고 봐야 한다면, 이 아름다운 광경도 머잖아 독창성을 모조리 상실하고 모든 것이 반복되는, 전날이나 다음날이나 다를 게 없는 존재의 비극이 되어버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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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는 숙모의 죽음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듯한 그 여자에게 연민을 느꼈다. 모두가 무슨 짓을 해서건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세상에서, 죽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곘는가? 그 누구도 판단할 수 없다. 각자가 자기 몫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며, 자기 삶에 의미가 없다는 걸 알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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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끔찍한 일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마치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를 돕고 싶다는 듯 아주 근심스런 표정을 짓지만, 실제로는 타인의 고통을 보면서 그들 자신은 그나마 행복하다고, 삶이 그래도 그들에게는 관대했다고 믿으며 즐거워한다. 그녀는 일찍부터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혐오했다. 베로니카는 청년에게 그녀의 상태를 그 자신의 욕구 불만 해소 거리로 내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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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사람이란 자기 세계 속에서 사는 사람이야. 정신분열증 환자, 성격이상자, 편집광처럼 말이야. 다시 말해 뭇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이지."
"당신처럼요?"
"하지만, 시간도 공간도 없고 그 둘의 결합만 있다고 믿었던 아인슈타인, 또는 대양 저 너머에 절벽이 아니라 다른 대륙이 있다고 확신했던 콜럼버스, 또는 인간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를 수 있다고 장담했던 에드먼드 힐러리, 또는 독창적인 음악을 창조해냈고 다른 시대 사람들처럼 옷을 입고 다녔던 비틀스, 아마 너도 이미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을 거야. 이 모든 살맏르, 그리고 다른 수많은 사람들 역시 그들 자신의 세계 속에서 살았어."
베로니카의 질문을 못 들은 척하면서 제드카가 계속 말했다.
'이 미친 여자가 제법 분별 있는 말을 하네.'
베로니카는 예수나 성모 마리아와 대화를 나누었다고 주장했던 성인들에 대해 엄마가 해준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그들 역시 자신의 세계 속에서 살았던 것일까?
"영하 오 도가 넘는 날씨에, 등이 깊게 팬 붉은 야회복을 입고 초점 잃은 흐릿한 눈을 한 채 류블랴나의 거리를 헤매는 한 여자를 본 적이 있지. 술에 취했구나 싶어서 도와주려 했지만, 그 여자는 내 외투를 거절했어.
아마도 그녀의 세계가 여름이었거나, 그녀의 몸이 그녀를 기다리는 누군가에 대한 욕망으로 뜨거워져 있었을 거야. 그 누군가 그녀의 망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녀는 자신이 느끼는 대로 살고 죽을 권리가 있는 거야,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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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기대했던 거의 모든 것을 마침내 얻게 되었을 때, 베로니카는 자신의 삶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매일맹리이 뻔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죽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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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다는 게 뭔지 알고 있냐고 했어요."
"그래. 바로 그거야. 이번엔 빙빙 돌리지 않고 바로 대답해줄게. 미쳤다는 건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해. 마치 네가 낯선 나라에 와 있는 것처럼 말이지. 너는 모든 것을 보고, 네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인식하지만 너 자신을 설명할 수도 도움을 구할 수도 없어. 그 나라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그건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느껴본 거예요."
"우린 모두 미친 사람들이야, 이런 식으로든 저런 식으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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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은 떨어져 있으니까, 네가 피아노를 친다고 해서 방해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어. 치고 싶으면 쳐."
베로니카의 떨림은 소심하고 억제된 미약한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울음을 주체하지 못한 채, 그녀는 스르륵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간호사의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간호사는 책을 놓고, 베로니카를 휩쓸고 있는 슬픔의 물결이 스스로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었다. 둘은 그렇게 반시간가량을 꼼짝도 않고 있었다. 한 여자는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울고 있었고, 또 한 여자는 슬픔의 이유도 모르는 채 위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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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현재의 순간을 즐기며, 증오가 비워놓고 간 자리에 사랑이 채워지는 것을 느끼며, 말없이 한동안 앉아 있었다. 때가 되었다고 느꼈을 때, 그녀는 달을 향해 앉아 마치 달이 귀를 기울이기라도 하는 양, 달을 위해 소나타 한 곡을 연주했다. 달이 우쭐해하자, 별들이 시샘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별들을 위해 한 곡, 또 정원을 위해 한 곡, 그리고 어둠 속에 묻혀 보이지는 않지만 그 너머 우람하게 서 있을 산들을 위해 또 한곡을 쳤다.
두번째 곡을 치는 도중에, 누군가 살롱으로 들어왔다. 정상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전혀 없는 정신분열증 환자, 에뒤아르였다.
베로니카는 그의 출현에 겁을 먹기는커녕, 미소를 지었다. 놀랍게도, 그 역시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음악이 달보다도 더 먼, 모든 것으로부터 차단된 그의 세계에까지 파고들어가 기적을 일으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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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를 좀 볼 수 있을까요?"
토론을 끝내기 위해 여자가 호소하듯 말했다.
이고르 박사는 단념했다. 이 촌여자는 그가 무슨 얘길 하는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딸이 자살을 기도해 혼수 상태에 빠졋는데도, 그녀는 철학적 관점에서 광기에 대해 논하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가 벨을 눌렀고 비서가 들어왔다.
"자살 미수로 들어온 그 아가씨를 좀 불러와요. 슬로베니아가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목숨을 끊는다고 잡지사에 편지를 썼던 그 아가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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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르튐의 주표적은 의지였다. 그 병에 걸린 사람들은 차츰차츰 모든 욕망을 상실하게 되고, 몇 년이 지나면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고 만다. 자신이 원하는 현실을 만들어줄 높은 벽들을 쌓느라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해버렸기 때문이다.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데 급급하다 보니, 내적인 발전마저도 한정시켜버린 것이다. 그들은 계속 직장에 나가고,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교통이 막힌다고 불평을 늘어놓고, 자식들을 낳는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조금의 내적 동요도 없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것이 통제되고 있으므로.
아메르튐에 의한 중독이 가져다 주는 폐해는 증오, 사랑, 절망, 열광, 호기심 같은 정열들 역시 모습을 감춘다는 데 잇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아메르는 더이상 아무런 욕망도 느낄 수 없었다. 살고 싶지도 죽고 싶지도 않았다.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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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무엇에건 습관을 들여서는 안 돼, 에뒤아르. 봐, 난 또다시 태양, 산들, 그리고 삶의 골치 아픈 문제들까지 사랑하기 시작했어. 내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 그건 나 자신 이외의 그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걸 인정하기까지 했지. 난 아직도 류블랴나 광장을 보고 싶고, 증오와 사랑, 실망과 근심, 진부한 일상에 속하지만 삶에 독특한 맛을 부여하는 단순하고 덧없는 그 모든 것들을 느끼고 싶어. 만에 하나라도 언젠가 내가 이곳을 나갈 수 있다면, 난 감히 미친 여자가 될 거야. 모든 사람이 미쳤으니까. 가장 못한 것은 자신이 미쳤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야. 그들은 남들이 그들에게 명령하는 걸 마냥 반복하며 살아가니까.
하지만 내겐 이 모든 게 불가능해, 이해하겠어? 마찬가지로 너도 해가 지기를, 한 여자 환자가 피아노 앞에 앉기를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내선 안 돼. 이제 곧 이 모든 게 끝날 테니까. 내 세계와 너의 세계는 이제 영원히 만나지 못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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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생각으로는, 그 어려움은 카오스, 즉 질서의 붕괴 혹은 무정부 상태가 아니라 질서의 과잉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사회는 점점 더 많은 규칙들로, 그 규칙들을 반박하기 위한 법률들로, 또 그 법률들을 반박하기 위한 새로운 규칙들로 넘쳐났다. 그것이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고,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법규를 일탈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되었다.
마리아는 그 문제를 잘 알고 있었다. 병 때문에 빌레트로 들어오기 전, 그녀는 사십 년 동안 변호사로 일했다. 변호사라는 직업을 시작하면서 그녀는 정의에 대한 순진한 비전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녀는 법이 만들어진 것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싸움을 한없이 연장시키기 위해서라는 걸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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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드카는 의자 하나를 당겨 그녀 곁에 앉았다. 그 긴 세월을 빌레트에서 지냈는데, 이 젊은 아가씨와 함께 잠시 더 머무르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 생각나? 그날, 세상은 보는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는 걸 설명해주려고 너에게 이야길 하나 해줬었지. 왕이 신하들의 머릿속에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질서를 강요하려 하자, 모두들 왕이 미쳤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세상에는 어느 쪽에서 보더라도 항상 똑같고 누구에게나 가치가 있는 절대적인 것들이 존재해. 사랑이 그중 하나야."
제드카는 베로니카의 눈빛이 변한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말을 계속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여자가 그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을 침대 앞에 앉아서 잠든 남자를 바라보며 보내기로 작정했다면, 난 거기에 사랑이 있다고 말하겠어. 또 이렇게도 말할 거야. 그 사이 그녀가 심장 발작을 일으켰는데도 오로지 그 남자와 떨어져 있지 않기 위해 잠자코 앉아 있었다면, 그건 그 사랑이 아직 더 커질 수 있다는 뜻이라고."
"그건 절망일 수도 잇어요. 더 이상 태양 아래에서 투쟁을 계속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하려는 시도 말이에요. 다른 세계에 사는 남자를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베로니카가 반론을 폈다.
"우린 모두 자기 자신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어. 하지만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바라보면, 그 모든 세계들이 서로 어울려 태양계, 성좌, 은하계를 형성하는 걸 알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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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부인의 병으로 돌아옵시다. 개개의 인간은 모두 유일해요. 자기 자신만의 자질, 본능, 쾌락의 형태, 모험을 추구하는 방식을 가지고 있죠. 하지만 사회는 집단적인 행동 양식을 강요해요.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왜 그런 식으로 행동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게 되죠. 그들은 그걸 받아들여요. 타자수들이 아제르티 자판이 최선의 자판이라는 사실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였듯이, 시계바늘이 왜 왼쪽이 아니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느냐고 물어보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으세요?"
"아니요."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미친 사람 아냐!'라는 말을 들었을 겁니다. 그가 계속 고집을 부린다면, 사람들은 이유를 찾아보려고 애쓰겠죠. 하지만 곧 그들은 주제를 바꿀 겁니다. 내가 부인께 드린 설명 외에는 다른 설명이 있을 수 없으니까요. 자, 이제 부인의 질문으로 되돌아가죠. 다시 한번 말씀해보세요."
"제가 나았나요?"
"아니요. 부인은 그 누구와도 닮지 않은 '다른' 사람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닮기를 원하죠. 그건 내 관점에서 볼 때 심각한 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르다는 게 심각한 병인가요?"
"모든 사람과 닮기를 자신에게 강요하는 게 심각한 거죠. 그건 신경증, 정신장애, 편집증을 유발시켜요. 자연을 왜곡하고 하느님의 법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심각한 겁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숲에 똑같은 잎은 단 하나도 창조하지 않으셨어요. 하지만 부인은, 부인이 다르다는 걸 미친 걸로 생각하죠. 그래서 빌레트에서 지내기로 작정하신 겁니다. 여기서는 모두가 다 다르기 때문에, 부인은 모두와 닮아 있는 겁니다. 이해하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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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건 바로 이 생각이었어요. '저 곡들을 만드느라 작곡가들은 고통을 당했고, 저 아이는 자기가 곧 죽으리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온 영혼을 바쳐 저 곡들을 연주하고 있어. 그럼 나는, 나 역시 언젠가는 죽을 목숨이 아닌가? 나 역시 내 삶이라는 음악을 저토록 열광적으로 연주할 수 있길 바라는데, 난 내 영혼을 어디다 내팽개쳐버린 것일까?"

(중략)
"난 내 영혼을 어디다 내팽개쳐버린 것일까? 내 과거 어딘가에. 내 것이기를 간절히 소망한 그 삶 속에. 저는 집과 남편, 직업-해방되고 싶었지만 감히 그럴 용기가 없어 버리지 못했던-이 있던 그 순간의 포로가 되도록 제 영혼을 방치했어요.
제 영혼은 과거 속에 있었어요. 하지만 이젠 이곳에 있어요. 저는 다시 이 몸 속에서 열기로 가득한 제 영혼을 느낄 수 있어요. 아직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아는 건, 삶은 저를 다른 길로 나아가도록 부추겼지만 정작 제 자신은 그걸 원치 않았다는 걸 이해하는 데 삼 년의 세월이 걸렸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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