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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어른이 되기 위해 아버지를 죽여야 한다!"
한국의 독자분들께
이 점, 믿어 주시기 바랍니다. 제 아버지는 여전히 살아계시고, 전 아버지를 죽일 생각이 없답니다. 아버지를 죽인다는 것은 우리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부모님들의 희망에서 벗어난다는 것, 즉 성인이 됨을 의미합니다. 전 이미 성인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아멜리노통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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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고함은 자연에 반하고, 생명에 반한다.
완벽하게 완고한 유일한 사람은 죽은 사람이다.
올더스 헉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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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당신 말 안 믿어요. 우린 그 나이 때 우리가 얼마나 미쳐 돌아갔는지 싹 잊어버린 거예요."
"당신은 안 그랬어."
"아뇨, 나도 그랬어요."
"당신은 미친 사람들과 함께 살았잖아. 그러니 좀 다르지."
"그래요, 나는 히피 공동체에서 살았죠. 그곳 사람들은 모두 미치광이였어요. 아홉 살과 열두 살 때 난 그 사람들보다 더 현명했어요. 하지만 열다섯 살 땐 나도 미쳐 돌아갔죠."
(중략)
"자살하고 싶었던 거야?"
"그건 절대 아니에요. 엄마에게도 똑같이 말했죠. 당연한 일이지만 어마는 내게 물었어요. <아무것도 먹지 않으려던 네가 독버섯은 왜 먹고 싶었니?> 그때 내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대답은 그러고 싶은 욕구가 맹렬하게 솟구쳤다는 것뿐이었어요."
"그럼 지금은? 지금은 다르게 설명할 수 있어?"
"아뇨. 열다섯 살엔 사람이 미쳐 돌아간다는 대답 밖에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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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한다는 게 뭔데요?"
"상대방에게 억누르기 힘든 감정을 갖는 거지. 애정을 불러일으키는 일종의 전류 같은 것 말이야."
"그런 자질을 갖지 못한 건 심각한 일인가요?"
"우리는 무대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가지고 있어. 공감하지 않아도 뛰어난 마술사가 될 수는 있지."
"그렇다면 공감한다는 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거네요."
"사람의 자질은 반드시 뭔가에 쓸모가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야. 넌 선한 사람이 되고 싶겠지, 안 그래?"
"선생님은 선한 사람이지만 타인에게 별로 공감하지 않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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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모란 꽃다발이 리노의 길거리를 두 다리로 걸어가고 있었다. 크리스티나가 꽃다발에게 문을 열어 주었다.
"모란 좋아하세요?"
"엄청 좋아하지. 아주 독창적인 선택이구나."
"이 꽃들이 당신을 닮은 것 같아요."
"이 꽃들이 당신을 닮은 것 같아요."
"그렇게 보이니?"
자신이 이토록 커다랗고 둥근 꽃송이와 닮았다는 말에 크리스티나가 재미있어하며 물었다.
"활짝 피어 있잖아요. 당신도 그렇고요."
크리스티나는 빙그레 웃었다.
"무슨 꽃을 좋아해요?"
"글쎄. 난 꽃에 대해서는 잘 몰라."
"글쎄. 난 꽃에 대해서는 잘 몰라."
"그치만 히피들은 꽃을 좋아하잖아요."
"그렇지. 하지만 특별히 가려서 좋아하지는 않았어. 그냥 눈에 띄는 꽃들을 따고, 전부 똑같이 취급했지. 꽃 가게에서 히피를 볼 일은 절대 없을 거야."
"노먼이 당신에게 꽃을 선물한 적은 없나요?"
"없는 것 같은데."
조는 무척 기뻤다. 크리스티나가 꽃에 관한 처녀성을 자기에게 준 듯 해서.
조는 무척 기뻤다. 크리스티나가 꽃에 관한 처녀성을 자기에게 준 듯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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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가 조금 더 분별이 있었다면 분노의 좌절 속에서 그 2년을 탕진해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잠복하는 사람처럼 행동하며 요령을 익혔을 것이다. 육체관계, 일시적인 만남들, 밤의 횡재들로 젊음의 무모한 시간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러나 크리스티나에게 홀딱 빠져 있던 조는 인생에서 매우 성적인 이 기간을 거세해 버리기 위해 스스로에게 가장 큰 동기를 부여했다. 그러나 똑같은 논리로 정반대되는 건강법을 옹호할 수도 있었으리라. 사랑의 시련은 좋은 연인이 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던가? 자신이 선택한 사람에게 숫총각의 우직한 열정을 선사하는 일보다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렇게 열여섯에서 열여덟 살까지의 시간을 보내면서, 조는 신경 속에 새겨질 때까지 마술의 각 단계들을 반복하고 상당수의 새로운 마술들을 연습했고, 노먼과 함께 무대 실무를 연구했다. 또한 운전 면허증을 따고, 책을 많이 읽었으며, 어쩌다 한 번씩 서투르게 수음을 했다. 간단히 말해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사랑의 이름으로 자신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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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15분 동안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관객의 눈에 그들의 재능이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 장면을 본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저 사람들은 왜 저런 위험을 무릎쓰는 거지?> 곡예사들은 관객의 생각을 의식했지만, 자기들의 목적이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임을 단번에 드러내지는 않았다.
조는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렇게 위험한 일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한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 걸까?> 그 역시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어려운 마술에 몸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위험은 허구가 아니었다. 해마다 파이어 댄서 가운데 한 명은 꼭 중화상 환자 병동으로 실려 갔다. 그 사실은 매우 낡아빠진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금지 욕구에 딱 맞아떨어졌다. 그들은 지구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성냥을 갖고 놀지 말라고 명했다. 그러나 방화증은 인간의 매우 뿌리 깊은 본능 중 하나다. 불처럼 사람을 유혹하는 것도 없다.
곡예란 결국 다양한 사물들이 저마다 갖고 있는 중력을 부인하는 것이다. 곡예사의 임무는 수많은 물질들이 공기 중에서 한결같은 움직임을 보이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정신에는 무게도, 숫자도 없다. 그것은 헤아릴 수 없다. 곡예는 물질에 정신의 특성을 부여함으로써 물질을 정신으로 바꾼다. 곡예사는 손만큼이나 민첩한 머리를 가져야 하고, 각각의 물체들이 추락하는 데 걸릴 시간을 계산해야 하고, 그 계산에 자신의 몸짓을 일치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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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는 더 이상 우리와 인생을 함께하지 않겠다는 거야."
"우린 그 애의 가족이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쉽게 우리를 잊어버리다뇨."
"당신이 하룻밤에 10만 달러를 버는 열아홉 살 아가씨라고 상상해 봐. 아마 미쳐 버릴걸. 그게 정상이야."
"슬픈 일이에요. 그 애는 위대한 마술사가 될 아이였어요. 그런데 어떻게 딜러로 사는 것에 만족할 수 있어요? 가장 잘나가는 딜러라 해도 말이에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거야."
"그러기까지 그 애가 코카인에 돈을 쏟아붓는 걸 난 상상조차 할 수 없어요."
"반드시 그렇진 않을 거야. 게다가 우린 그 애를 판단할 입장도 아니잖아."
"반드시 그렇진 않을 거야. 게다가 우린 그 애를 판단할 입장도 아니잖아."
"당신과 나라면 그런 너절한 일에는 절대 손대지 않을 거예요."
"크리스티나, 내 말 잘 들어. 조가 우리와 아주 다른 삶을 선택했다는 걸 이제는 받아들여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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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가 공정함 같은 것엔 도통 관심이 없다는 걸 모르나요?"
"그 아이가 틀렸습니다. 사람은 공정해야 해요."
"당신도 틀렸어요. 당신은 당신의 인생과 그 아이의 인생 모두를 망치고 있어요."
"당신도 틀렸어요. 당신은 당신의 인생과 그 아이의 인생 모두를 망치고 있어요."
"달리 어찌 행동할 도리가 없습니다.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아이는 그것 떄문에 괴로워하지요.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괴로움이 존재합니다. 바로 자기 아이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아버지의 괴로움이지요."
그가 등을 돌렸다. 그는 더 이상 나와 이야기하기를 원치 않았다.
사람들은 자기 아들이 자기를 닮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거꾸로 아버지가 아들을 닮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노먼이 미치광이가 된 것처럼.
#.간단평
자기복제가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황산>까지만 해도 나는 너무나 만족했다. 가장 최근작인 생명의 한 형태는 아멜리노통브가 여태 낸 소설중에 최고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근데 기다려서 읽은 이번 신간 <아버지 죽이기>는 그 자극적인 제목에 비해 내용에서 쫙 하고 김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예상했던 반전에서 벗어나는 재치는 과연 아멜리노통브 답다 싶지만 조가 가지고 있던 아버지라는 존재의 결핍에서 '그 남자'를 선택하는 그 감정전개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 너무 짧았던 건지 아니면 뒤에서 너무 급하게 붙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인지.
그녀의 전작 <머큐리>에서 볼 수 있었듯이 어떤 무리한 결말이든 논리적으로 연결을 잘했던 노통브치고 이번에는 조금 논리적인 구성력이 아쉬운 듯. 너무 반전과 주제전달에만 치중한 나머지 노통브답지 않게 긁어부스럼 혹은 논리적연결의 구멍을 만들어놓은 것이 '그 남자'가 아닌가 싶고.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렇게 경쾌하게 관점을 이동시키는 이야기의 전개는 과연 놀랍다. 사실 앉은 자리에서 2시간만에 다 읽었다. (대선투표일인 날에 집중이 될 정도의 흡인력이면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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