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nri Matisse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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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와 아내는 그림과 모자의 판매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으므로 그림 주문을 받기 시작했는데, 주문에는 대개 까다로운 요구가 많이 따랐다. 그와 마르케는 1900년의 만국박람회를 위해 파리의 그랑팔레를 장식하는 일감을 맡았다. 그 일을 하느라 마티스는 너무나 탈진했으므로, 일을 끝낸 뒤 아내와 함께 보앵으로 물러나서 힘들게 얻은 휴식을 즐겼다.
마티스는 건강도 별로 좋지 않은 데다 너무나 의기소침해져서 그림을 그만둘까 하고 고민했다. <차양 밑의 화실>에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분투하는 이런 상황이 반영되어 있다. 이 작품은 우울하고 지하 감옥 같은 그림으로서 빛이 거의 없어 무채색으로 그려졌다. 열린 창밖의 꽃핀 나무는 계시의 약속이며, 이미지 속의 이미지이다. 마티스는 나중에 아들인 피에르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건 색가에서 색채로의 이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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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에게 장식은 순수 색채와 추상적 아라베스크, 평평한 2차원과 리듬을 통해 정신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장식 미술은 정신적 내용을 내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더러 내용을 추론하라고 요구한다. 마티스는 이 사실을 이슬람 미술에서 배웠다. 하지만 색채 또는 도안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동양 미술을 살펴보면서 마티스는 새로운 눈으로 사물을 보게 되었으며, 1907년에 이탈리아의 피렌체, 아레초, 시에나, 파도바를 방문한 뒤 이렇게 지적했다. "파도바에 있는 조토의 프레스코를 볼 때 나는 그리스도의 생애 중 어느 장면인지 분간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 속에 있는 감정은 느꼈다. 선과 구성과 색채에 있는 감정 말이다. 제목은 단지 내가 받은 인상을 확인해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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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색채는 동일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에서 말할 것도 없이 공통적이다. 일곱 개의 음표에 조그만 변화를 주는 것으로도 가장 찬란한 작품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하다. 시각 예술에서도 그렇게 못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 앙리 마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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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에는 '행복의 종교'가 구현되어 있다. 프로방스에서 유행하던 원무인 파랑돌 춤은 마티스에게 삶의 기쁨과 리듬의 정수 그 자체의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장식적 양식과 인체가 <춤>에서 조화를 이루며 삶과 기쁨의 미묘하게 전염되는 감각을 전달한다. 인체들이 발산하는 대단한 위엄은 형태적 용어로 대부분 설명될 수 있다. 즉 그들의 장대함과 위엄은 예술적 전략을 단순화한 데서 두어 개의 영역으로 나뉜 크고 동질적인 색채 면, 순수한 선 드로잉을 추구하는 경향, 윤곽이 주는 강렬한 느낌 같은 것에서 나온다.

<음악>도 같은 요소를 채택한다. 초록색 언덕과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다섯 개의 붉은 인체가 등장한다. <음악>에 나오는 남성 인체들은 그들을 통합시키는 <춤>의 타원형 모티프 같은 동력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대신 그들은 고립되어 있고 음표처럼 한 줄로 배열되어 있다. 플루트 연주자는 <목가>에 나오는 플루트 연주자와 연관이 있고, 바이올리니스트는 <음악>(스케치)에서 옮겨온 인물이다. 그러나 이 인물들은 도중에 위치가 바뀌었다. 그들은 이제 사분의 삼 정도 몸을 돌리지 않고 감상자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서로 분리되어 있음이 더욱 강조될 뿐만 아니라 감상자의 관심을 요구하는 정면 자세를 취하게 된다.

<춤>에서 마티스는 자신이 그린 장식적인 2차원성으로부터 비사실주의적 정신성의 극한을 끌어내려고 시도했다. 이제 그는 사실주의와 일상성으로 돌아가야 할 필요를 느꼈고, <'춤'이 있는 정물>에서 그렇게 했다. 화실의 광경에 포함되어 있는 <춤>은 식탁이 만드는 평행사변형을 통해 글미의 공간성은 극히 단순명료하게 표시되며, 그 위의 공간은 과일 접시와 상자와 화병이 있는 정물이 점유하고 있다.
장식적 단계와 사실주의 단계는 마티스의 생애 내내 번갈아 나타난다. 한 작품이 사실주의적 공간성을 배제할 정도로 거의 완전히 추상적으로 그려지면 다음 그림은 마지막 붓질이 끝날 때까지 사실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가해지면서 충만해진다. 이러한 양면성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마티스 작품의 동양식 미학과 서양식 미학의 끊임없는 분열, 혹은 그의 기질 속의 더욱 낭만주의적인 측면과 더욱 명석하게 과학적인 측면 간의 균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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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엇보다도 진정으로 관심을 갖는 것은 표현이다." 독일 표현주의 화파인 '브뤼케'가 갖는 강화된 감정주의와 대조적으로 마티스는 그림이 그림 그 자체를 표현하고 그것이 그 자체의 세계가 되기를 원했다. 그는 자신의 창조적 전제를 검토하면서 거듭하여 이렇게 주장했다. "내게 표현이란 내 그림에서 가시화 될 수 있거나 어떤 격렬한 동작에서 보이는 열정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내 그림 속에 완전히 자리 잡고 있다. 인체들이 취하는 자세, 그들 주위의 텅 빈 공간, 흡족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데 쓸모 있는 다양한 요소를 배치하는 데 있다. 모든 부분이 그림에 보여야 하고 중심적인 것이든 이차적인 것이든 각각 적절한 역할을 해야한다. 그림에 필요치 않은 것은 그림을 망친다. 하나의 작품은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필요치 않은 세부 사항이 하나라도 있으면 그것은 그에 대해 반응하는 감상자의 정신에서 진정한 반응의 결과가 되어야 할 어떤 측면을 몰아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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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연에 맹종하는 복제품을 만들 수는 없다. 대신 나는 자연을 해석하고 그림의 정신에 복종시켜야 한다고 느낀다. 색채를 한데 칠할 때 그것들은 살아 있는 화음이나 색채의 조화 속에 연결된다. 마치 음악의 화성이나 화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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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의 작품을 무언가와 비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오렌지이다. 앙리 마티스의 그림은 오렌지처럼 눈부신 빛의 열매이다.", 기욤 아폴리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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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는 탕헤르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파리에서 작업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 결정이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흐린 하늘"이 너무나 갑갑했고, 어머니를 망통에 모셔다 드리느라 남프랑스에 잠깐 갔다가 남부를 향한 오랜 갈망이 다시 일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그는 예전 집이 있던 케생미셸에서 살 만한 곳을 발견했고, 파리에 대한 집착이 이국적인 것의 유혹을 이겨냈다. 마티스는 또 일상에 함몰될까봐 두려워했다. 너무 친밀해지면 풀도 별로 참신해 보이지 않고 살마들도 생생하게 느껴지지 않으며 빛 자체도 그리 밝아 보이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원숙한 경험을 쌓고 싶었다.
1914년 8월 3일, 제1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파리에 있던 마티스는 공포에 질렸다. 가족이 살던 집은 독일군의 공격으로 부서졌고 마티스는 보앵에 머물러 있던 어머니, 그리고 그 마을의 다른 주민들과 함께 독일군에 잡혀간 동생의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푸르만에게 이렇게 썼다. "이 전쟁은 거기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의 삶에도 심각하게 끼어드네. 이유도 모르는 채 생명을 잃는 일개 병사의 감정을 상상할 수 있을까. 그 자신은 설령 그런 희생이 옳다고 느낄지라도 말이야."

전쟁이 마티스의 그림에 미친 영향은 전쟁 기간에 만든 작품의 특징인 색채를 점점 덜 쓰면서 더 단순해지는 성향(이 성향은 오래전부터 있었다)을 살펴보아야만 파악할 수 있다. 사각형, 장방형, 원, 타원 같은 기하학적 기본형으로 형태를 재단한는 경향은 1914년에 절정에 달했고, 1916년까지도 계속되었다. 가장 극단적 수준의 기하학적 단순화를 보여주는 그림이 <노트르담의 풍경>이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이 그림은 케생미셸에 있는 건물 5층의 집 마루에서 마티스가 본 경치를 그린 다수의 연작 가운데 최고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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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에는 각기 특징적인 아름다움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보존해야 한다. 마치 음악에서 음향을 보존하도록 애써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것은 조직의 문제, 색채의 아름다움과 신선함을 보존해줄 배열을 찾아내는 문제이다.", 앙리 마티스

"회화의 임무는 더 이상 역사적 사건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들은 책에서 읽을 수 있다. 우리는 회화에서 더 많은 것을 기대해야 한다. 회화는 화가의 내적 상상력을 표현하게 해준다.", 앙리 마티스

"초상화란 가장 신기한 예술 형태 가운데 하나이다. 그것은 화가에게 특별한 자질 이외에 모델과의 거의 완전한 친족 관계를 요구한다. 화가는 모델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면 안 된다. 그의 정신은 열려 있고 무엇이든 받아들여야 한다. 마치 풍경화에서 공중에 있는 냄새까지도 모두 받아들여야 하듯이.", 앙리 마티스

"내 그림에 붉은 점이 몇 개 있다면 그것은 작품의 핵심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림은 그것과 상관없이 그려졌다. 그 붉은 점을 지워버려도 그림은 여전할 것이다. 하지만 마티스의 작품에서는 그럴 수 없다. 아무리 작더라도 붉은 점 하나를 지워버린다면 그림 전체가 즉시 와해되어버릴 것이다.", 파블로 피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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